Sep
14
7:00 AM07:00

연약한 자를 이해하고 용납합시다

로마서(Romans) 14:13~19

로마 교회 안에는 신전에 드려졌던 제물(고기)을 먹지 않고 채소 위주로 식사를 했던 유대인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조상때부터 레11장의 음식법을 준수해왔고 예수를 믿은 후에도 음식법을 지켰으며 특히 우상에게 드려진 제물은 입에도 대지 않았습니다. 바울께서는 먼저 이 연약한 자들을 받아주고 비판하지 말고 더 나아가 그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기로 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날 교회 공동체 안에도 여전히 이와 같은 일들은 반복되어 일어납니다. 주일성수, 술과 담배, 좌우로 나눠진 정치적 견해, 동성애 자들을 어떻게 용납할 것인가에 대한 태도는 여전히 민감한 문제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바울사도가 말씀하신것처럼, 비본질적인 부분에서는 갈대처럼 유연한 태도로 약한 자들을 용납하고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이 실족하여 넘어져 교회를 등지는 일이 없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들을 위해서도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교회 안에서 비본질적인 일로 문제가 생겼다면, 주저하지 말고 약한 자들을 용납하고 비판하지 맙시다. 먼저 용납하고 손을 내밀어 받아들이고 하나가 되는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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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
7
8:30 AM08:30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로마서(Romans) 13:1~14

구원받은 성도의 삶은 주님과 이웃에게 사랑의 빚진 자로 살아야하며 재림의 신앙을 가지고 예수로 옷 입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에 대한 빚은 절대 성도가 다 갚을 수 없지만 그 복음의 빚진 맘으로 성도를 섬기고 사랑하며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실천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이런 행동이 곧 종말의 신앙이라고 바울 사도는 말합니다. 이미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면서 종말이 시작되었고 구원 받은 성도는 종말을 살고 있으며 다시 오실 예수님의 재림으로 종말은 완성될 것입니다. 재림을 기다리는 종말의 신앙은 예수로 옷 입고 사는 생활입니다. 이것은 곧 빛의 갑옷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로 옷 입는 것이 곧 빛의 갑옷이라면 아마도 이 옷은 전쟁이나 전투와 밀접한 연관이 있을겁니다. 즉, 마귀를 대적하는 영적인 전쟁을 말합니다. 이 마지막 때에 자다가 깨어  어둠의 일을 벗고  이 예수의 빛의 갑옷을 입고 일어납시다. 그리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고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동시에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사탄과 싸웁시다. 한 주간도 예수의 빛의 갑옷을 입고 전투하며 살아가는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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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
30
8:30 PM20:30

Delivering from Darkness

Acts(사도행전) 12:25-13:12

성도의 연합이 너무 선하고 아름다워서 대제사장 머리에 붓는 고귀한 감람유같고 메마른 유대 광야를 적시고 생명을 주는 헐몬산의 이슬같다고 시편 133편은 말합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성도의 연합은 유대 문화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대사회에서 아버지의 유산을 2배 이상 받는 장남은 결혼한 동생 부부가 아이가 생길 때까지 함께 데리고 살며 보살핍니다. 이 일은 대단히 불편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동생 부부를 먼저 배려하고 섬기는 일입니다. 본문의 진정한 연합은 바로 이런 형제의 연합에서 출발합니다. 실제로 지난 20년동안 Living Hope Community Church 와 함께 아름답게 연합하여 동거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분들의 섬김과 배려가 먼저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분들의 선조들은(북장로교단) 140년 전에(1885년) 조선에 언더우드 선교사와 팀을 보내셨고 복음전파, 성경번역, 교회와 학교설립, 병원설립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선조들에게 전했고 우리에게 전수되게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우리가 다시 여기서 그 선교사님의 후손들과 연합예배를 드립니다. 참으로 감격적인 만남이 아닐수 없습니다. 먼저 함께 예배하며 이 예배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Living Hope Community Church  성도님에게도 감사와 안부를 전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드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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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
24
8:30 AM08:30

사랑으로 함께하는 성도의 삶

로마서(Romans) 12:9-21

구원받은 성도의 삶은 바른 예배를 회복하고 바른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시작되고 동시에 사랑으로 어떻게 사람들을 섬기며 관계하며 살아야 합니다. 기뻐하는 사람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어야하며 보복하는 일도 해서는 안 됩니다. 원수를 원수로 갚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필요를 채우며 원수 갚는 일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악으로 악을 갚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기고 갚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원수 갚는 일을 당신에게 맡기라고  하실까요? 그것은 성도가 원수의 악을 악으로 갚을 때 영혼이 크게 손상되기 때문입니다. 원수의 악한 행위가 성도의 영혼을 손상시킬 수 없지만 원수들이 사용했던 그 악으로 다시 원수를 갚으려할 때 영혼이 손상을 입습니다. 결국 하나님 당신이 원수를 갚음으로 성도의 영혼을 보호하시려 하는 것입니다. 한 주간도 사람들과 함께 울고 함께 기뻐하고 원수들을 먹이고 마시게하며 하나님의 사랑의 통로가 되는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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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
16
9:30 PM21:30

성도는 은사받은 사람입니다

로마서(Romans) 12:3~8

구원받은 성도가 먼저 해야할 일은 예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이 주신 은사로 성도를 섬기며 교회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도 예외없이 구원받은 모든 성도에게 은사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아직 은사가 없다고 생각되는 분은 은사를 받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렇게 은사의 목적은 연약하고 힘든 지체를 섬기며 교회를 세우며 함께 신앙생활하는 것입니다. 이런 각도로 은사를 들여다보면 사실 은사는 영적인 은사보다는 일반적이고 교회 생활에 필요한 은사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오늘 본문 롬12장에서도 영적인 은사는 예언의 은사가 유일합니다. 7개중  6개는 일반적인 은사입니다.(섬기는 은사, 가르치는 은사, 위로하는 은사, 구제하는 은사, 다스리는 은사, 긍휼을 베푸는 은사) 다시 한 번 은사의 목적을 기억합시다. 신비하고 멋진 영적인 은사로 나를 드러내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교회 안의 성도들을 섬기고 돌아보기 위함입니다. 한 주간도 이 아름다운 은사를 가지고 성도를 섬기며 하나님께 영광되는 삶을 살아가는 저희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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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
9
8:30 PM20:30

성도다움, 그 첫째는 예배

로마서(Romans) 12:1~2

사도 바울께서 롬12장에서 칭의 받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예배라고 하셨습니다. 예전에 드렸던 형식적인 예배가 아니라 성도들의 몸을 드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예배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구약의 제사에서 제물은 언제나 죽은 상태였고 죽은 상태로 드려졌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구원받은 성도는 자신의 몸을 산 제물로 드려 예배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때문에 가능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부활의 존재가 된 성도들은 죽은 제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산 제물로 드려지는 산 예배는 우리의 삶으로 생활가운데 생활예배로 드러나야 합니다. 그것이 몸을 산 제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이 번 주간도 삶의 현장에서 이 산 제물로 드리는 살아있는 삶의 예배를 드립시다. 그리고 그 예배에 성공합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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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
3
6:00 AM06:00

토기장이와 남은자에 대한 의미

로마서(Romans) 9:19~29

신앙생활을 해오신 분이라면 토기장이의 비유를 많이 들어보셨고 나름대로 이해를 잘 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롬9장에 등장하는 토기장이 비유를 문맥과 상관없이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토기장이가 되시는 하나님이 귀하게 사용될 그릇과 천하게 사용될 그릇을 주권에 따라 만들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 말 자체는 틀리지 않았지만, 본문의 문맥에서 볼 때에 좀 거리가 있는 해석이고 이해입니다. 바울은 토기장이 비유를 통하여 당시 구원에 있어서 아브라함의 혈통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유대인의 구원독과점같은 생각에 대하여 잘못을 지적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하였습니다. 유대인의 독단적인 생각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은 로마인이나 이방인들을 선택하셔서 당신의 약속의 자녀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을 공정한 선언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만 구원받는다는 독단적이고 불공정한 생각을 하나님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할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구원에 관하여 나타난 토기장이 비유는 하나님의 은혜요 긍휼입니다. 약한자, 부족한자, 나중된 자를 먼저 선택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선택받고 구원받은 것은 설명할 길이 없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헤요 사랑이었습니다. 한 주간도 이 긍휼과 사랑을 다시 기억하는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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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27
9:30 AM09:30

하나님의 예정은 하나님의 은혜

로마서(Romans) 9:6-16

하나님의 선택은 경우에 따라 자기 맘대로 결정하시는 갑질이나 횡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에는 항상 크신 하나님의 주권과 함께 긍휼과 은혜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첫째 이스마엘과 그두라의 아들 시므란, 욕산, 무단, 미디안, 이스박, 수아같은 아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선택은 유약한 이삭이었습니다. 그들 하나님의 약속의 아들로 세운 것입니다. 이삭의 아들 중에도 첫째 에서가 있었습니다. 그는 남자답고 강하여 사냥에 능한 멋진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은 부족하고 모자라고 성격적으로도 모가난 둘째 야곱이었습니다. 야곱의 아들 중에서도 유능하고 명석하여 세계를 다스리던 총리 요셉가문을 통하여 역사하지 않았습니다. 이방 여인과 결혼하고 며느리와 관계하여 아들을 낳았던 부끄럽고 부족한 유다와 그의 가문을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이뤄가셨습니다. 유다를 통하여 메시아를 보내주셨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세상의 기준과 방법을 초월합니다. 오직 당신의 긍휼과 은혜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선택하고 역사하십니다. 나를 택하여 불러 구원의 통로로 역사하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하나님의 선택을 기억하고 생각하는 한 주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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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20
10:00 AM10:00

지옥은 있습니다

마가복음(Mark) 9:42~49

오늘날 성도들이 지옥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진부하고 극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생각의 배경에는 사랑의 하나님이 단순히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간들을 영원히 타는 용광로에 넣어 고통받게 할 수 없다는 '만인구원론'의 주장이 깔려있습니다. 그 논리대로라면, 하나님은 사랑이기 때문에 당신이 만든 인간은 한 사람도 예외없이 모두 구원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설령 지옥이 존재해도 그곳에서 다시 구원받을 기회가 주어질 것이며 결국 지옥의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아서 지옥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도 가르칩니다. 이런 사상이 현대의 종교다원주와 맞물려 급속히 세상과 교회 안으로 퍼지게 됩니다. 이미 주후 543년 콘스탄틴 회의에서 이단으로 규정했지만 그 사상은 계속하여 이어져 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만인구원론의 사상은 분명한 이단입니다. 왜냐하면 지옥을 만드신 성자 예수님이 사복음서에서 지옥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성경에서도 언급하기 때문입니다. 이 번 한 주도 주님이 지옥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기억합시다. 지옥은 당신이 만들었기에 존재하며 그곳은 영원히 불타는 용광로같고 일단 들어가면 절대 나올 수 없기에 들어가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지옥에 들어가지 않으려면 예수님 당신을 인격적으로 믿고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고 이 땅에서 구원을 이뤄갈 때에 가능하다고 선포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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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12
4:30 PM16:30

유대인에게 구원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로마서(Romans) 9:1~6

바울은 롬 1-8장에서 변함없는 하나님의 구원을 설명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의롭다하셨다면(칭의) 성화의 과정을 거쳐서 반드시 재림의 날에 영화롭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구원을 어떤 피조물이나 상황이 끊을 수 없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이제 바울은 변함없는 하나님의 구원을 롬 9-11장에서 목숨보다 더 사랑했던 동족 유대인에게 적용하여 풀어내고 있습니다. 아무리 8가지 특권을 받았던 유대인들이라해도 자동으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알고 믿음으로 받습니다. 바울의 이 강력한 메세지는  현대 그리스도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아무리 믿음의 가문에서 태어나고 수 십년을 교회에 다니고 영향력있는 직분을 받고 성경을 많이 알아도 그것이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알고 믿음으로 받습니다. 한 주간도 이 하나님의 구원을 생각하고 묵상하는 시간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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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5
to Jul 6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

로마서(Romans) 8:31~39

오늘은 그리니치 한인교회가 27주년 맞이하는 주일입니다. 우리 교회의 출발은 웨체스트 반석교회당 지하에서 웨체스트 동부장로교회로 1998년에 창립예배를 드리면서 출발했습니다. 그후 2000년 7월 1일에 그리니치의 제일루터교회로 옮기면서 권수경 목사님을 모시고 그리니치 한인교회로 이름을 바꾸고 새롭게 출발하였습니다. 그후 2006년 9월 3일에 지금의 리빙호프 커뮤니티 교회로 장소를 옮겨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과 계획에 따라서 이 곳에 한인들을 위한 예배공동체를 세우셨고 지금까지 지켜오시고 계십니다. 이 교회의 주인은 담임목사와 직분자들과 평신도들이 아니라 이 교회를 당신의 피로 값주고 사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교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 당신이 지금도 교회를 위하여 끊임없이 일하시고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이신 그 분이 달리시기에 우리는 임의대로 멈출수 없습니다. 당신이 멈추라고 하시는 그 날까지 함께 예배하며 서로를 격려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워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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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29
8:00 AM08:00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의미

로마서(Romans) 8:28~30

하나님을 사랑하고 부름을 받은 성도가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롬8:28절 말씀을 오해하고 오용했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성도들이 분쟁이 생기거나 의견충돌이 생겼을 때 서로 협력하고 양보하여 하나님의 선을 이루자고 말씀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본문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선은 오직 성도들의 구원과 연관되어있는 선함입니다. 이 선함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이 협력하여 이루는  하나님의 선입니다. 실제로 원문이나 영어 성경에도 합력하고 협력하다는 말이 없으며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구원을 위하여 일하신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일하시는 주체는 하나님이라고 명시되어있습니다. 우리 좋으신 하나님은 지금도 변함없이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성도들이 성화되어 영화되는 그 날까지 일하시고 계심을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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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21
10:30 PM22:30

성령님이 하시는 탄식

로마서(Romans) 8:26~30

로마서 8장에서 세 종류의 탄식이 나온다고 지난 주 설교 시간을 통해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들이 재림의 날에 성도들이 나타나기를 위해서 목을 빼고 간절히 탄식하며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첫 열매인 성도들도 탄식합니다. 성도는 양자됨을 소망하며 속으로 탄식합니다. 장차 나타날 예수님의 부활과 영광에 참여할 그 날을 기대하면서 현재는 탄식하며 신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탄식은 절망의 탄식이 아니요 소망의 탄식입니다. 마지막으로 성령님께서 성도를 위하여 탄식하십니다. 연약한 성도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때때로 기도할 바를 모릅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그 때 성령님께서 성도를 위하여 친히 탄식하며 기도해주시며 도와주십니다. 여기서 돕다는 것은 ‘손을 맞잡아 준다'는 것입니다. 쓰러져있거나 지치있는 자를 향해서 위로를 건네여 손을 잡아주며 일으키듯이, 지쳐 낙심한 성도들이 기도할 바를 모를 때 성령님께서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번 주간은 우리를 위하여 탄식하시며 대신 기도하시는 위로의 성령님을 바라봅시다. 그리고 기대며 나누고 교제하는 한 주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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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15
7:30 AM07:30

피조물의 탄식

로마서(Romans) 8:18~25

미국의 아버지의 날(Father's Day)은 매년 6월 셋째 주일에 기념됩니다. 이 날은 아버지와 아버지 역할을 하는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날입니다. 1910년 워싱턴 주에서 시작되었으며, 1972년에 공식적인 국가 기념일로 지정되었습니다. 가족들은 선물, 카드, 식사 등으로 아버지에게 사랑과 존경을 표현합니다. 성경의 인물 중에 아버지의 신앙과 역할로 인정받고 존경받는 분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신앙적으로 인격적으로 완전한 아버지의 모습과 역할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완전하고 완벽한 한 아버지를 소개합니다. 그 분은 바로 인간들을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들까지 십자가에 희생시키시며 그들을 구원하신 아버지 말입니다. 이 좋은 아버지 날에 아름답고 귀하게 양육해주신 육신의 아버지께 감사드립시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지금도 보좌에서 우리를 위해서 중보하시며 성령님으로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온 종일 기억하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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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7
8:00 PM20:00

자녀삼으시는 성령님

로마서(Romans) 8:12~21

재벌 총수들은 자신의 아들에게 경영을 가르치기 위해서 신분을 밝히지 않고 인턴 사원부터 시작키시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일방적으로 고생을 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일종의 경영수업을 시키는 것입니다. 총수의 아들로서는 볼 수 없고 경험할 수 없는 가려진 평사원의 시각으로 회사를 보고 경험하라는 아버지의 배려입니다. 분명  인턴사원의 일과는 두려움과 좌절의 연속일겁입니다. 그러나 그 아들은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초라한 현실과 낮은 위치와 현재의 스팩에도 실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남들의 조건과 스팩을 부러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상사들로부터 아무리 힘든 멸시천대를 받아도 쉽게 낙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회장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한정된 시간의 고난을 아주 의미있게 받아들이며 배워갈 것입니다. 성도들은 기억하셔야 합니다. 우리들은 세상의 재벌 총수의 아들 정도가 아닌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이 세상 그 어떤  핍박과 낙심에도 절망할 수 없습니다. 이런 자녀의 신분을 주시고 가능케하시는 분이 바로 양자 삼으시는 성령님이십니다. 이 고마우신 성령님이 내 안에 거하십니다. 그 분께 감사하는 한 주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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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31
6:30 PM18:30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디모데후서(2 Timothy) 4:1~5

성도가 그리스도 예수의 아버지 하나님을 나의 '아바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된 것은 성령님께서 역사하시고 또 증거하고 증언하시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영으로서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드러내고 믿게하여 하나님의 자녀되게 하시는 영이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바울사도께서는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이 아니라 자녀로 삼으시는 영이라고 했습니다.(롬8:15)  로마서가 기록될 당시 로마의 입양제도는 성도들에게 생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네로황제부터 입양된 사람이었으니까요. 일단 친부로터 입양된 아이는 양부의 모든 권리와 재산을 법적으로 상속받을 수 있었습니다. 만일 양부에게 친자녀들이 있다 하더라도 그 권리를 잃지 않고 동등하게 법적으로 보장받습니다. 그로부터 과거는 완전 씻겨집니다. 심지어 과거의 채무까지에서도 면죄됩니다. 왜냐하면 그는 과거의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양부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성도들이 성령님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고 아버지의 모든 권리와 상속을 받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보다 뛰어나고 잘나서가 아닙니다.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고 성령님의 은혜입니다. 이렇게 좋은 성령님을 생각하고 기억하는 한 주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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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4
1:30 PM13:30

육신을 따를 것인가, 성령을 따를 것인가

로마서(Romans) 8:5~11

예수 안에 있는 자 즉, 예수를 믿고 영접하고 교제하고 누리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의 요구에서 그를 해방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죄로부터 해방받은 성도는 자기 원하는대로 살아도 되는 것입니까? 그에 대한 답을 오늘 본문이 하고 있습니다. 칭의 받은 성도는 자기 육신대로 살고 생각해서는 안되며 성령께서 인도하시는대로 살고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육신대로 생각하며 산다면 반드시 죽음이요 성령이 인도하는대로 생각하고 살면 생명과 평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육신대로 산다는 것은 타락한 자기 본성을 중심으로 산다는 것이고 성령대로 산다는 것은 성령이 나를 온전히 지배하여 그 분이 생각과 뜻대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이 번 한 주도 육신으로 생각하고 사는 길을 가지 말고 오직 성령께서 인도하시대로 말씀이 인도하시는대로 성령의 생각으로 행동하는 성도님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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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18
11:00 AM11:00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로마서(Romans) 8:1~4

제 26문 “전능하신 성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나는 믿사오며”라고 고백할 때 당신은 무엇을 믿습니까?

답: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하신 아버지께서 아무 것도 없는 중에서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한 그의 영원한 작정과 섭리로써 이 모든 것을 여전히 보존하고 다스리심을 믿으며, 이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그리스도 때문에 나의 하나님과 나의 아버지가 되심을 나는 믿습니다.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하기에 그가 나의 몸과 영혼에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시며 이 눈물 골짜기 같은 세상에서 당하게 하시는 어떠한 악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것을 나는 조금도 의심치 않습니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이기에 그리하실 수 있고, 신실하신 아버지이기에 그리하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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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10
9:30 PM21:30

내 속에 있는 죄가 문제입니다

로마서(Romans) 7:14~25

권성수 교수님의 로마서 주석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바울의 고향 길리기아 다소(터키) 근처에 한 종족은 살인자에게 아주 잔인한 형벌을 내렸습니다. 그것은 바로 살아있는 사람과 시체를 묶어서 공동체 밖으로 버리는 것입니다. 죄인의 다리와 시체의 다리를 묶고 팔은 팔끼리 결박했으니, 죄인이 묶인 그 끈을 풀지 못한다면 시체와 함께 썩을 것입니다. 바로 암덩어리와 같은 시체의 죽음이 살아있는 자에게 번져서 산 자를 썩게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자신이 그 시체에 묶인 사람 같다고 탄식을 합니다. 물리적인 몸은 아니지만, 영적으로 죄와의 갈등 속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탄식합니다. 그것에 이유는 자신 안의 죄가 선을 못하게 막고 오히려 죄를 짓는 자리로 끌고가기에 그것이 너무 곤고하고 비참하다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비참함은  스스로 해결할 길이 없고 오직 예수님만이 해결할 수 있다고 합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삶에서도 죄는 내 안에 머물러 살며  나를 원하지 않는 죄의 길로 끌고 갑니다. 그런데 이런 곤고하고 비참한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을 기억하는 한 주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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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3
6:00 PM18:00

율법에 대한 변호

로마서(Romans) 7:6~14

큰 병을 가지고 병원을 방문하면 의사들이 MRI를(자기공명영상) 꼭 찍도록 권유한다. 한 번 찍는데도 대단히 큰 금액이 들지만 의사가 추천하는 이유는 아주 미세한 상처나 종양도 오차없이 정확히 보고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병원을 방문하여 MRI기계로 영상을 찍어서 췌장암 4기라는 진단을 받고 앞으로 1달 정도 밖에 살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는 이 현실에 대단히 실망하고 낙담하게 되었지만, 결코 이 MRI 기계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 기계 자체가 잘 못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환자는 자기의 병을 알게해줘서 고맙게 생각할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율법이 MRI 기계와 같이 죄를 발견하고 드러내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하는 역할을 합니다. 환자가 이 기계를 원망하지 않듯이, 우리도 율법의 잘못을 지적할 수 없습니다. 율법 자체는 하나님이 주셨기에 선하고 거룩한 것입니다. 이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내 힘으로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없음을 인정하고 율법으로 구원을 이룰 수 없음을 인정하고 성령님께 의지하여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율법의 외형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을 깨달아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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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26
10:30 PM22:30

율법으로부터 자유하라

로마서(Romans) 7:1~6

로마서를 기록했던 바울은 누구보다 율법에 열심이었고 진심이었던 사람입니다.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나서 율법을 연구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유학을 왔었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오직 율법만 생각하고 연구했던 율법의 종되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 성도에게 칭의를 받은 성도는 이제 그 율법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율법과 완전 단절된 관계라고 선언했습니다. 사실 율법 자체는 하나님이 주신 선한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오해하여 율법의 행함이 구원의 근거가 된다고 가르쳤던 율법주의가 문제였습니다. 바울은 그 율법주의를 완전히 끊어내고 단절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입니다. 이번 주간도  주님 주신 구원을 깊이 생각합시다. 율법의 열심과 행위가 아닌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 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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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19
9:00 PM21:00

부활의 최고 선물은 부활인 성도

로마서(Romans) 6:1~11

성도에게 있어서 부활과 부활신앙이란 성도가 죽은 후에 역사의 끝에서 주님 재림의 그 순간에 부활하는 것만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 미래의 부활도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왔고 또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은 사람의 부활도 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은 지금 이곳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성도들이 체험하고 적용하는 현재의 삶에 나타나고 적용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울 사도께서는 로마서 6장에서 미래에 일어날 부활을 현재형 시제로 사용하여 부활을 살아가자고 권면했습니다. 성도에게 임할 그 미래의 부활이 너무나 확실하고 당연했기에 현재 시제로 당겨서 사용했던 것입니다. 분명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 그 다음 열매는 우리들의 차례가 될 것입니다. 동시에 현재의 삶에서 주님의 부활이 소망이 되고 삶의 실제가 되는 역사를 이뤄내는 성도가 됩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죽기 전부터 이미 부활이셨고 지금도 부활의 그리스도로 성도와 함께 하심을 믿읍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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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12
10:00 PM22:00

성화, 거룩을 위한 여행

로마서(Romans) 6:12~14

구원받은 성도는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많다고하여 그 죄악에 머물거나 즐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세례받았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연합하여 영적세례를 받았기에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죄에 대하여 죽고 다시 부활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칭의받은 성도는 구원받은 그 사실에 안주하여 머물 수 없습니다. 성도는 구원에 감격하고 감사하며 끊이없이 거룩한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성도를 부르신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결코 성도는 죄를 의도적으로 짓거나 은혜를 더하기 위해 죄 안에 머물 수 없습니다. 이미 죄의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영역으로 신분이 옮겨진 성도는 죄가 자연스럽지 않고 불편하고 고통스럽고 부자연스러운 존재인 것입니다. 한 주간도 죄에 머물러 죄를 쉽게 용납하거나 인정하지 말고 끝까지 피흘리기까지 대항하는 저희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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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5
10:00 PM22:00

죄에 대하여 죽은 사람

로마서(Romans) 6:1~14

칭의받은 성도는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죄에 대한 죽음은 육체의 시신이 모든 감각이 죽어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는 그런 상태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원어적으로 죄로 죽었다는 것은 단순과거 단수형으로써 과거의 '그 죄'(아담의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이고 그 죄의 영역에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구원받기 전에 죄의 지배 아래에서 죄가 왕노릇하던 그 영역에 있지 않고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의 영역 안에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성도가 죄에 대하여 죽었으니 죄에 대한 그 어떤 유혹이 사라져 없다거나 전혀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실제로 성도는 구원받고도 계속하여 유혹받고 죄를 짓고 삽니다. 그러나 더이상 성도는 죄 안에서 죄의 지배 안에 머물며 습관적으로 죄를 즐기며 지을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제 칭의받은 성도는 죄를 지을 수 있으나 죄를 짓는 것이 정상적이지 않고 불편해야 합니다. 한 주간도 이렇게  죄에 대하여 죽은 자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 은혜 안에 머물며 죄를 미워하며 불편히 여기며 피흘리기까지 싸우는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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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29
7:30 AM07:30

처음 아담과 마지막 아담

로마서(Romans) 5:12~21

동서를 막론하고 학문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사람은 프로이드와 막스라고 합니다. 심리학자 프로이드는 무의식의 세계를 발견하여 사람의 정신 영역이 얼마나 넓고 가능성이 있는가를 알려준 업적이 있었습니다. 또 막스는 공산주의 창시자로 지금까지 권력의 피지배 계층을(프롤레타리아) 새로운 권력의 창출자요 보았던 점이 큰 공헌을 한 이유라고 합니다. 오늘 롬 5:12-21에 인류의 영적 세계 속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첫 번째 아담으로' 그의 불순종으로 죄가 들어오고 죄로 인하여 결국 사망이 온 인류 안으로 들어와 사망아래 놓이게 한 사람입니다. 다른 한 사람은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로서 죄와 사망으로 멸망하게된 인간을 화해하고 구원하기 위해 오신 하나님 아들입니다. 성도는 마지막 아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이 예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한 주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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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22
6:30 AM06:30

구원받은 자의 다음 단계

로마서(Romans) 5:1~11

바울은 로마서 1-4장에서 모든 사람은 죄인이며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될수 있다고 말해왔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의 삶은 어떠해야 할까요? 그 대답이 5장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먼저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고 사람들과도 화목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깨어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그것으로 이웃과도 화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구원자는 환난 중에 낙심하지 않고 소망으로 즐거워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오히려 환난을 즐거워하며 자랑합니다. 왜냐하면 그 고난이 인내와 연단을 만들어내어 참 소망을 주기 때문입니다. 한 주간도 구원받은 자로 하나님과 이웃과 화평하며 삽시다. 환난이 오더라도 그 고통을 즐거워하며 자랑합시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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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15
8:30 PM20:30

구원의 기준이 바뀐 적은 없습니다 II

로마서(Romans) 4:13~25

롬4장에서 바울께서 말씀하는 믿음은 막연하고 맹목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그가 말하는 믿음은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믿음이고 그 약속을 바라보는 믿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지도 않았는데,맹목적인 신념만 가지고 노력하고 행동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일종의 자기 신념이고 적극적 사고 방식일 뿐입니다. 그 다음으로 바울 사도께서 말하는 믿음은 일반 상식적인 확률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령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항에서 이륙한 비행기가 정해진 시간에 안전하게 도착할 것이라는 99%의 가능성을 믿기에 안심하고 비행기를 탑니다. 로마서에서 말하는 이런 기술과 경험 그리고 상식과 지식을 초월하는 믿음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바울께서 말씀하사는 믿음은 입으로만 말하는 믿음이 아니라 실제적인 헌신과 행동을 수반하는 믿음을 말합니다. 로마서 4장에서 바울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이러한 믿음이 있었기에 의롭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참 맏음에는 약속이 있고 확률적인 지식을 넘어서고 헌신하고 행동하는 믿음입니다. 이 번 주간은 내가 과연 무엇을 믿으며  신앙생활을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하고 고민하는 한 주가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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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8
1:30 PM13:30

구원의 기준이 바뀐 적은 없습니다

로마서(Romans) 4:1~12

16세기 루터와 칼빈이 종교개혁을 일으킬 당시 부패한 로마카톨릭의 신앙은 행함과 공로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이신칭의'사상은 너무나 생소한 것이었습니다. 종교개혁시대 뿐 아니라, 바울이 로마교회에 편지를 보내던 그 시절에도 믿음으로 의에 이른다는 진리는 이해할 수 없는 궤변과 같은 소리였습니다. 특히 율법의 열심으로 평생을 살았던 유대인들에게 그 믿음의 논리는 정말 혐오 그 자체였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율법의 행위와 노력으로 할례받은 자들만이 의에 이를 수 있다고 믿었고 생명처럼 율법을 준수해 왔었습니다. 그렇게 믿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바울 사도께서는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다윗도 율법의 열심이 아닌 믿음으로 의에 이르렀다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롬4) 이렇게 믿음으로 의에 이른다는 '이신칭의'사상은 루터나 칼빈 같은 종교개혁자들이 먼저 고안한 말이 아닙니다. 이미 성경 말씀에 율법과 할례가 주어지기 전부터 하나님은 율법없이 할례없이 아브라함을 그의 믿음을 보시고 의롭게 하셨던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와 열심이 아닌,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이 은혜에 감동하고 감격하고 감사하는 한 주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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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1
8:30 AM08:30

구원받은 성도가 하지 말아야 할 것들

로마서(Romans) 3:27~31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진노 아래있는 인간에게 바울 사도께서는 '그러나 이제는'는 이라는 말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반전을 이야기 합니다. 앞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의 즉, 구원이 펼쳐질 것이라 말합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 삼으시고 그 피로 당신을 의롭게 드러내시고 동시에 그 예수님의 피를 믿는 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의롭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칭의'라고 하였습니다. 죄있는 자를 법정에서 무죄 선고를 해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죄를 용서받고(용납) 구원받은 무엇을 해야겠습니까? 여기에서 바울을 구원받은 자가 하지말아야 할 것을 언급합니다. 먼저는 자기 자랑하지 않는 것이고 남을 차별하지 않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울법을 파기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를 믿고 의롭다함을 받은 성도는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믿움으로 서로 세워주고 차별하지 않으며 율법의 선한 뜻을 알고 지켜나갑니다 한 주간도 예수 믿는 성도로서 이 3가지 적용을 하면서 살아가는 여러분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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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22
7:30 PM19:30

그러나 이제는

로마서(Romans) 3:21~26

오늘 함께 살펴볼 롬3:21-31절의 말씀은 성경 중에서 가장 중요한 본문이라고 강조하시는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많습니다. 롬1:18-20절에서 바울사도는 헬라인이나 유대인 모든 사람은 죄인이며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다고 그 죄를 고소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반전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이제는'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바울께서 설명하십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복음 안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선포합니다. 이 의는 인간이 노력해서 획득되어지는 의가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에게 주어지는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스스로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기에 자신의 믿음을 자랑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자신의 믿음이 크고 강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믿은 것 같지만 그 믿음은 주님께로부터 선물로 내게 온 것입니다. 예수님께로부터 온 선물인 이 믿음이 복음의 출발입니다. 이 믿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는 한 주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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