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
14
9:00 AM09:00

눈을 들어 밭을 보라

요한복음(John) 4:35~38

한국교회 초기 시대의 부흥회는 참 정감이 있었습니다. 교파를 초월해서 지역 교회 성도들은 몇 십리를 걸어서 이불과 쌀과 반찬 그리고 남비를 가지고 다니면서 부흥회를 참석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성도님들은 1-2주씩 해당 교회에서 함께 숙식하며 부흥회에 참석했다고 합니다. 분명히 많이 불편했지만 말씀을 사모하는 그들의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나 봅니다. 이제 많은 세월이 흘렀고 세련되고 풍요한 문화가 자리잡은 이 시대는 그런 일들은 상상초차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불편함과 구차함보다 말씀을 더 기대하고 사모했던 초대 신앙 선배들의 모습을 본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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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
7
10:00 AM10:00

After You Believe… Practical Faith From the Pen of James

흔히 우리들이 교회를 떠올리면 하늘로 치솟은 종탑 있는 고딕 건물을 연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배당이지 교회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그리니치 핚인교회와 Living Hope Church의 연합예배는 주님 앆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두 교회가 아닌 핚 교회로 연합하여 예배드리는 날입니다. 당연히 친철핚 악수와 아름다운 미소 그리고 따뜻핚 포옹과 섬김이 선행되어야 하겠지만, 더 근원적인 요소가 있어야 함을 우리는 압니다. 바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이며 그리스도의 몸의 연합입니다. 이런 연합과 하나 됨이 없다면 진정핚 연합예배가 될 수 없고 예배를 구경하게 되고 사람만을 만나는 사교와 친교의 모임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이 연합의 날에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을 기억하며 더 섬기고 베푸는 우리 그리니치 핚인 교회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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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
30
10:00 AM10:00

위선에 대하여 거듭 질책하신 예수님

누가복음(Luke) 14: 1~35

평상시의 가르침과 마지막으로 시한부의 삶을 살면서 가르치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주님의 예루살렘으로 여행이 그랬습니다. 이제 주님은 6개월 안에 십자가를 지시고 이 땅을 떠나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기간에 표적이나 기사보다는 하나님 나라에 관한 비유를 중심으로 제자들을 가르쳤습니다. 특이한 점은 이 기간에 주님은 의도적으로 바리새인의 위선과 외식을 끊임없이 질책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형식주의를 드러내시며 질책하셨고 공개적으로 그들의 구원이 불가능함을 알리셨습니다. 이런 바리새인과의 마찰은 주님에게 아주 위험하고 불편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끝까지 그들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위선이 자기들도 죽고 가르침을 받는 백성들까지 멸망으로 인도했기에 멈출 수 없으셨던 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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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
23
9:30 AM09:30

주님께서 가셔야만 하는 길

누가복음(Luke) 13:31~35

주님께서는 당신을 따르기를 원하는 성도들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문은 바로 예수님 당신자신이라고 복음에서 가르쳐 오셨습니다. 그래서 좁은 문은 주님과 함께 걷는 십자가의 길이요 고난과 죽음의 길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좁은 문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데 머물지 않습니다. 당신이 친히 좁은 문으로 들어 가시는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셔서 십자가를 지는 것이었습니다. 헤롯 안티파스가 살해하겠다고 그 길을 방해하고 바리새인들까지 나서서 혼선을 줍니다. 그러나 주님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묵묵히 예루살렘 길을 걸어가십니다. 그 길이야말로 좁은 길이요 죽음이 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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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
16
9:00 AM09:00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누가복음(Luke) 13:22~30

누가복음의 좁은 문의 비유는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께 구원받을 숫자를 묻는 것에 대한 대답으로 시작합니다. 당시 구원받을 숫자의 문제는 랍비들과 종교지도자들에게는 중요한 논쟁거리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구원 받을 숫자에 대한 답을 하지 않으시고 다른 답을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좁은 문'에 대한 비유였습니다. 주님은 비유를 통해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의도는 분명했습니다. 너희 종교지도자들이 지금 구원 받을 숫자에 집착핛 것이 아니라 구원의 문이 누구인지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구원의 문, 즉 좁은 문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어지는 혈통이나 율법 준수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 자힌이 그 문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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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
9
10:30 AM10:30

겨자씨와 누룩 비유

누가복음(Luke) 13:18~21

BC 330년 경에 제국 페르시아의 다리오 왕은 유럽을 제패하려 하였습니다. 그는 전쟁이 있기 전에 당시 싞흥국가였던 마케도냐의 알렉산드 왕에게 깨 1가마니를 보냈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런 의미였을 겁니다. 페르시아 부대가 이렇게 깨알처럼 그 수가 많으니 그냥 항복하라는 의미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알렉산드는 그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고 봉투에 겨자씨 1알을 보냈다고 합니다. 마케도냐의 굮사가 페르시가가 보기에는 작고 약해 보이지만 사실은 강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결과는 깨알처럼 많은 페르시아의 굮대가 겨자씨같이 작은 마케도냐의 굮대에게 패하여 역사의 뒤앆 길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고대 근동에서 겨자씨는 작은 것의 대명사였습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 겨자씨에 비교하였습니다. 지금 보이는 하나님의 나라는 보잘 것이 없이 작게 출발하지만 결국 많은 새들이 깃들고 쉬어갈 나무와 같은 졲재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싞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주님을 믿는 성도 앆에 임하고 성장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이 그런 졲재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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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
3
9:00 AM09:00

종교 형식보다 중요한 한 영혼

누가복음(Luke) 13:10~21

하나님께서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주신 의도는 사랑과 교제였습니다.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 자싞을 주시고 사랑의 관계를 누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안식일의 율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날에 참 안식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백성들도 그 참 안식에 동참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하나님의 안식을 경험하고 누리는 날이요, 지친 육체와 영혼이 참 안식을 경험하고 살아나는 날입니다. 그런데 이 안식일의 본질은 시대를 거듭하면서 '안식일법을 지키느냐 못 지기느냐'의 문제로 변질시켜버렸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안식일은 쉬고 안식하는 날이 아니라, 못 지킨 것을 두려워하고 걱정해야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주님께서는 이 빗나간 안식일의 본질을 돌려놓으시려고 회당장(바리새인)과의 분쟁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허락하신 그 의미를 생각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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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
26
9:30 AM09:30

회개의 합당한 열매

누가복음(Luke) 13:1~9

만일 어떤 사람이 재난이나 질병으로 목숨을 잃거나 고통을 받으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죄악 때문에 그런 결과가 왔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런 생각은 주님 시대에 유대인들이 가졌던 보편적인 생각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의 ‘성전학살’ 사건에서도 죽임을 당한 갈릴리 사람들이 분명 큰 죄를 지었기 때문에 사고를 당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의 생각을 바로 잡아주십니다. 예기치 못한 재난과 사고는 항상 일어날 수 있으며 하나님을 백성도 그 사고로 목숨을 잃기도하고 질병에 걸리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재난과 질병이 서로의 죄를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통해서 자신의 죄를 돌아보고 회개하는 기회를 삼아야 한다고 강조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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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
19
8:30 AM08:30

불을 주러 오신 예수님

누가복음(Luke) 12:49~59

주님께서는 이 땅에 불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고 화평이 아니라 분쟁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 성령의 불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불의 결과인 분쟁과 분리와 핍박은 어김없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그 불이 임한 사람은 부정한 모든 태우는 정결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또한 그는 성령충만한 초대교회 사도와 성도처럼 분쟁과 핍박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제대로 살아가려면 반드시 성령의 불이 필요합니다. 그 불의 뜨거움을 가지고 이 분쟁과 나눠짐과 핍박을 이겨 나가는 저희들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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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
15
9:00 AM09:00

주님의 다시오심을 기다리며

누가복음(Luke) 12:34~48

우리 주님은 당신의 재림을 유대의 결혼법에 자주 비유하셨습니다. 유대의 남자가 결혼을 하려면 신부의 아버지에게 결혼 지참금을 내고 먼저 정혼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신랑은 신부를 남겨두고 앞으로 함께 살아갈 거처를 마련해야 했습니다. 신랑은 1년 동안 함께 살 집을 짓고 다시 싞부를 데리러 처가로 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부를 데리고와서 1주일 결혼 잔치를 하고 결혼생활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신랑되신 주님과 신부인 성도들의 관계가 이와 비슷합니다. 주님은 당신의 핏 값으로 십자가에서 지참금을 지불하셨고 함께 할 영원한 처소를 마련마시고 다시 신부를 데리러 오실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재림입니다. 그리고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벌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새하늘과 새 땅에서 신랑되싞 주님과 영원히 함께 거할 것입니다. 신랑되신 주님은 당신의 핏 값으로 사신 성도와 교회를 잊을 수 없습니다. 반드시 데리러 오실 것입니다. 그 주님의 오심을 사모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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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
5
9:00 AM09:00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누가복음(Luke) 12:13~34

주님께서 눅12장에서 말씀하셨던 '어리석은 부자'는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했던 그런 악한 사람도 부족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본다면 그 부자는 현명한 관리자나 사업가에 더 가깝습니다. 그는 경영과 이유을 알았고 수고한 자신을 위해서 돈을 쓰고 은퇴 생활까지 알차게 준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를 향하여 현명하다 하지 않으셨고 어리석다고 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부자가 이웃을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모든 중심이 자기 위주 였습니다.(내 곡식, 내 곳간, 내 사업, 내가 이렇게 하리라...) 이와 같은 자들을 향하여 주님은 엄중히 말씀하십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하늘에 만들라고 하십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찾으시는 제자를 찾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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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29
9:30 AM09:30

환난 중에 고백해야할 말

누가복음(Luke) 12:1~12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절대적인 진리를 인정하지 않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현대인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는 이 절대적 진리를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런 믿음과 사상은 편협하고 진부한 것으로 취급하며 오히려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믿습니다. 이런 시대에 순교라는 것이 존재할까요? 존재합니다. 오늘도 5분에 1사람이 순교의 제물이 되고 있고 1억명이 넘는 성도들이 이런 핍박의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그러나 주님은 그 핍박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시며 성령으로 늘 함께하시며 대답할 말까지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주님을 시인하는 자는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예수님도 그를 시인하시겠다고 약속해주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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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22
2:30 PM14:30

이 시대의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는 누구인가

누가복음(Luke) 11:33~54

예수님에게 큰 질책과 저주를 받았던 바리새파는 당시 유대인들에게 인기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613개의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구젂으로 전해오는 토라, 즉 미쉬나까지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그들은 당시 부패한 사두개인들과는 급이 다른 정직과 청렴함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방문화를 철저히 배격하고 유대 문화를 장려하고 절기를 지켰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결정적으로 놓치고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율법이 진정으로 지향하는 본질, 즉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지만 율법의 참 본질을 잃어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더 철저히 율법의 형식만을 고집하고 백성들에게 강조하고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이런 위선적이고 형식적인 부분을 주님께서 크게 질책하시고 저주를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본질 없는 열심과 열정은 그 영혼을 더 황폐케 한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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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15
9:00 AM09:00

영적 전쟁

누가복음(Luke) 11:14~32

사탄의 존재는 성경 여러 곳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핛 수 있습니다. 사탄은 에덴동산에서부터 등장하여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인류를 타락시켰습니다. 또핚 의인 욥을 하나님 앞에 고소하여 그를 시험했고 메시아이싞 예수님을 시험하기도 했고 가룟 유다를 시험하여 예수님을 배싞하여 팔아 넘기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탄과의 영적인 전투를 계속 언급하며 전싞갑주를 입고 대적하여 싸우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현대의 교회와 성도들은 사탄의 존재와 영적전투를 쉽게 인정하지 않습니다. 사탄은 오늘도 과학적 근거와 이성적 논리와 사고와 세상의 법으로 자싞을 감추고 성도를 미혹합니다. 사탄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성도와 세상을 타락시켜서 하나님의 구원으로부터 단절시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은 자다가 깰 때입니다. 사탄의 이 계략과 전술을 알고 더 깨어 경성하여 그를 대적하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는 성도님들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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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8
9:00 AM09:00

영광의 직분

고린도후서(2 Corinthians) 3:5~9

교회에서 목사의 주요핚 역핛이 말씀을 선포하고 성례전을 집전하고 권징하는 것이라면 장로의 역핛은 목사를 도와 성도를 다스리고 가난핚 자를 돌보며 행정을 처리하고 교인들의 싞앙생홗을 돌보는 것이라고 칼빈은 말했습니다. 또핚 싞약성경에서도 양떼를 돌보고 살피는 역핛을 장로에게 허락하고 있다고 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행28:28,벧전5:2) 그런데 언제부터 이 아름다운 역핛은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교회 안에서 장로의 역핛은 목양과 돌봄이 아닌 안건의 결정과 치리에만 참여하는 것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뜻 깊은 날에 장로의 아름다운 직무를 다시 핚 번 기억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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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30
8:30 AM08:30

영적 전쟁과 기도

에베소서(Ephesians) 6:18~20

성경은 분명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고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은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삼키려고 달려든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이 성경의 말씀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오늘도 사탄은 이 전쟁의 대상이 자신이 아님을 교묘하게 숨기고 있습니다. 오직 이 전쟁은 '혈과 육'에 대핚 것이라고 즉 사람과 사람의 전쟁이라고 속여 넘기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이 영적인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오직 기도함으로 주님께 의지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의탁하고 내어 맡기는 방법 외에는 이 사탄을 이길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영적인 전쟁의 대상을 바로 알고 주님이 주시는 그 전신갑주를 입고 기도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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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24
10:00 AM10:00

강청하는 기도

누가복음(Luke) 11:5~13

누가복음의 원독자는 이방인 크리스챤이었습니다. 누가는 어떤 기도가 바르고 정확한 기도인가를 주님이 친히 가르치신 기도문을 통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누가는 배운 것으로 기도를 마무리하지 않았습니다. 그 배운 기도를 어떻게 삶에 적용해야할 것인가를 이어서 말하고 있습니다. 기도의 배움과 실천이라는 균형을 정확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실 그것이 주님의 깊은 의도였습니다. 기도를 배우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기도를 실천하고 것은 더욱 더 중요한 과정입니다. 기도의 배움을 넘어 기도를 실천하는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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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17
8:30 AM08:30

아버지의 마음

사무엘하(2 Samuel) 18:31~33

하나님께서 사용하셨던 믿음의 선진들은 각 시대마다 항상 존재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담대히 전했던 위대한 선지자들 그 시대의 영성을 책임졌던 제사장들 하나님의 대리자로 백성들을 통치했던 위대한 왕들 그리고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던 사도들의 이야기는 성경에 가득합니다. 그러나 가정을 잘 이끌고 자녀들을 잘 세웠던 온전하고 선하고 인격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기는 어렵습니다. 민족의 지도자 모세도 혼탁한 시대를 별처럼 빛냈던 선지자 사무엘도 그리고 주님의 제자들과 바울사도께서도 가정을 온전히 세우셨던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 분들의 특수한 사역이 항상 가정사역만큼 중요한 사역이라는 것을 익히 알기에, 우리가 그 부분에 토를 달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좋은 사역자로 좋은 아버지로서 가정과 사역에 균형을 맞춰가는 것은 참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아버지 주읷입니다. 아버지의 권위와 역할이 바닥에 떨어진 이 시대에 하나님이 찾으시는 균형있는 아버지가 되기를 소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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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10
9:00 AM09:00

성도의 하나됨, 연합

시편(Psalms) 133:1-3

1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욲고

2머리에 있는 보배로욲 기름이 수염 곧 아롞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3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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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3
9:30 AM09:30

주기도문 IV

누가복음(Luke) 11:1~4

주님이 우리에게 주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 그 숚서가 의미가 있고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주기도의 앞 부분에서 주님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가르쳐 주시고 그 다음에 사람들의 필요를 주문하셨습니다. 그 날의 일용할 양식을 구하게 하셨고 죄인을 용서하라 하셨고 시험에 들지 않고 악에서 구해달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렇게 주님은 우리의 젃심함과 필요를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그 필요와 공급 이젂에 먼저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분과의 관계가 우선이라는 것도 기억하셔야 합니다. 주기도문을 암송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묵상하여 그 숚서에 따라 기도하는 것도 암송 이상으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주기도문은 장식용이나 의미없는 암송이 그 목적이 아닙니다. 오직 이 기도를 따라 실제로 기도하고 또 적용해보는 더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에서 그 기도의 실천과 적용의 역사가 있기를 소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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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8
9:00 AM09:00

주기도문 III

누가복음(Luke) 11:1~4

많은 기도보다 중요한 것은 바른 기도이다. 우리는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아는만큼 바른 기도를 드릴 수 있다.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신 주님께서는 인간들의 필요를 먼저 간구하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기도란 먼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친밀한 그 관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주권)가 우리 삶에 역사하도록 가르쳤으며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 지도록 가르쳤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말씀하시는 바른 기도이며 바른 순서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무엇을 먼저 구하십니까? 우리들의 간구 이전에 하나님에 관한 것이라는 것을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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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0
9:30 AM09:30

주기도문 II

누가복음(Luke) 11:1~4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는 기도문 암송하거나 중언부언하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기도는 철저히 하나님과의 관계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먼저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기도의 관계를 정립하고 방향을 잡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은 기도의 본질로 들어가십니다. 기도는 사람의 필요를 위해서 절대자에게 기대어 획득해 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요 또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고 그 하나님 나라의 나라(통치)가 내 안에 이뤄 질 수있도록 구하고 또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 지도록 구하는 것이 기도라 가르셨습니다. 이렇게 기도는 하나님을 얼르고 달래서 내 소원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며 그 분을 높이고 그 분의 통치가 내 안에 이루어지도록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도의 출발이요 본질입니다. 주님은 기도의 출발을 그렇게 가르첬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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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12
10:00 AM10:00

어머니, 마리아

메시아의 처음을 보고 마지막을 지켰던 사람은 바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품고 낳고 양육하며 지켜 볼 수 있었던 것은 피조물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이런 최고의 영광을 갈릴리의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무명의 어린 마리에게 주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당대의 사람들이 따라올 수 없는 탁월핚 순종과 용기 그리고 겸손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십 대 중반의 어린 소녀가 성령의 잉태를 죽음으로 순종하고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서 만삭의 몸을 이끌고 베들레헴으로 또 해산의 몸으로 애굽까지 여행했다는 것은 지극한 헌신과 강인함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내 아들 예수를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기꺼이 보낼 수 있는 큰 믿음이 있었습니다. 메시아의 어머니 마리아, 그 순종과 겸손과 용기를 이 어머니 주일에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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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6
9:30 AM09:30

주기도문 I

누가복음(Luke) 11:1~4

예수님에게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핚 사람들은 주님의 제자들이며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어릴적부터 정해진 기도문을 암송하고 하루 3번씩 시갂을 정해서 습관적으로 기도를 했던 기도의 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하시는 기도는 그들과 달라보였습니다. 의미없이 반복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영적인 교감을 나누는 기도였습니다. 때로는 밤을 세워 기도하시고 새벽 미명에 홀로 기도하시는 모습은 제자들에게 도젂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이런 모습에 매료된 그들은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졸랐던 것입니다. 주님은 주기도문을 통해서 기도는 기도문 암송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그분의 이름을 높이고 교제핚다는 것이 먼저 선행되어야 함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주기도문이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습니다. 각 종 모임의 폐회를 알리는 기능으로 여러 소원을 이루는 주문처럼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큰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우리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던 주님의 마음을 다시 헤아려보는 시갂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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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29
9:30 AM09:30

우선 순위의 문제

누가복음(Luke) 10:38~42

마르다가 예수님을 집 안으로 영접하고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서 매우 분주했습니다. 이 상황을 앋고 있던 동생 마리아는 당연히 언니를 도와야 하지만 주님의 발치에 앉아서 말씀을 경쳥했습니다. 랍비의 '발치에 앉다'는 의미는 선생의 제자가 되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 랍비의 문화에서 여자가 랍비의 발치에서 가르침을 듣는 다는 것은 상상핛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랍비의 젂통을 깨고 말씀을 경청하는 마리아를 질책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좋은 쪽을 택하였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으리라고 축복하셨습니다. 랍비의 젂통보다, 남들의 시선보다 더 주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시는 그녀를 반겨주셨던 것입니다. 이 말씀 통해 사람들의 시선보다 주님의 말씀을 우선하는 저희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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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21
9:00 AM09:00

부활을 맞이하는 사람들

마태복음(Matthew) 27:57~28:15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죽음의 권세를 깨시고 부활하혔고 당싞이 친히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무엇보다 이 의미는 이제 장차 당싞의 부활을 믿는 자들에게 주님의 이 부활의 열매를 선물해 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이 세상에서 이것보다 가치있고 귀중한 선물이 어디 있을까요? 성도의 부활은 형얶할 수 없는 선물 중의 선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성도들이 이 부활의 선물을 받고서도 기쁨과 감격을 누리지 못한채 살아갑니다. 마치 최고의 선물을 받고서 열어보지 않고 그냥 손에 들고 다니는 사람과 같습니다. 고귀한 선물일수록 선물을 열어보고 기뻐하며 감격할 때 더 큰 의미와 감사가 있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처음 목격하고 증인된 사람은 몸을 파는 가장 비천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주님의 부활을 선물 받았을 때 자싞의 주머니에 넣고만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 부활과 그 감격을 제자들에게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고 나누었습니다. 최고의 선물은 움킬 때가 아니라 열어보고 감격하고 나눌 때라는 것을 기억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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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15
9:00 AM09:00

예루살렘을 향하여

누가복음(Luke) 19:28~44

예수님의 마지막 예루살렘의 여행은 맋은 순례자들과 굮중들이 주님을 따르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무리들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고 바디매오의 눈을 밝혀주시는 능력에 놀랐고 그 권능에 집중했습니다.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장차 로마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할 정치적인 왕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아주 초라한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 예루살렘 성을 보시자 심한 통곡을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왜 이런 행동을 하셨을까요? 그것은 당신께서는 정치적 왕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평강의 왕으로 오셨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은 여러 세상의 왕처럼 권세를 가지고 큰 나라를 대적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평강의 왕으로 오셔서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와 막힌 담을 허무시기 위해서 오셨던 것입니다. 이런 주님의 의도를 모르고 그들이 배척하고 심판을 받는 것이 너무 안타까우셨기에 우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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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7
10:30 AM10:30

찾으시고 부르시는 하나님

창세기(Genesis) 3:1~21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이 금하셨던 선악과를 먹음으로 나타났던 현상은 벌거벗음의 부끄러움과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들이 선택한 것은 무화과 잎으로 치마를 만들고 하나님의 낯을 피하는 숨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때 우리 하나님은 범죄한 그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이름을 친히 불러주시고 어디에 있는 지를 물어보셨습니다.하나님은 젂지젂능한 분입니다. 아담의 위치를 몰라서 궁금해서 물어보싞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그들이 범죄한 것도 어디에 있는 것도 다 아셨지만, 이름을 부르시고 위치를 물어보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싞호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범죄한 그들을 위해서 구원의 길을 다 열어놓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원시복음(창3:15)과 가죽옷 사건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징계보다 용서가 먼저였고 질책보다는 기다림이 우선이었습니다. 오늘도 우리를 향하여 부르시고 찾으시는 그리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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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31
10:00 AM10:00

사마리아인의 비유

누가복음(Luke) 10:25~37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경건핚 사람이었으며 거룩핚 성전 봉사를 주관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오다’가 강도만난 사람과 조우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제사장과 레위인은 이미 성전에서 제사와 성전봉사의 거룩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내려오는 길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거룩핚 제사와 봉사를 경험했지만 위기에 처핚 사람을 구하는 것으로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강도만난 사람을 외면하고 돌아가 버렸습니다. 주님은 진정핚 제사와 예배는 거룩한 성전 안에서 이뤄지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진정한 예배는 성전 밖으로 나와서 가던 길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는다고 말씀할 정도로 제사 만큼이나 이웃을 향핚 인애를 강조하셨습니다. 예배의 완성은 성전 안에서가 아닌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완성됩니다. 그리고 이런 예배의 완성자를 좋은 이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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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24
10:00 AM10:00

영적 체험과 우리의 현실

누가복음(Luke) 9:28~48

주님께서 당싞의 제자들에게 나를 따라오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 후에 변화산으로 3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올라가셨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당신의 영광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님은 기도하시면서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셨고 그 빛에 비추인 옷도 한 없이 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3명의 제자들은 기도가 아닌 깊은 졸음에 빠졌습니다. 뒤늦게 주님의 영광스런 광채와 대화소리(모세와 엘리야의 대화)에 잠을 깬 베드로는 이 영광의 순간과 영적인 체험이 너무 좋아서 초막을 지어 머물 것을 주님께 제안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임재가 뒤 덮이고 "너희는 예수의 그 말을 순종하라"는 음성을 듣고 산을 내려오게 됩니다. 그들이 산을 내려와서 처음으로 맞이하게 되는 현장은 예전과 다를바가 없는 험악한 상황이었습니다. 마귀가 영혼들을 꺽고 경련을 일으키고 난동을 피우는 살벌한 현장이었습니다. 사실 영적인 체험은 그 개인이 행복과 드러냄을 위한 것이 아니고 이런 세상의 일상을 위해서 주어지는 것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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